우리가 매일 당연하게 사용하는 전기는 전국에 뻗어있는 거대한 송전탑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오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대한민국의 혈맥을 책임지는 '강철 심장'인 송전탑과, 그 위에서 세상을 밝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수십 미터 상공, 바람과 마주 서는 사람들
송전탑 유지 보수원의 일과는 '오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들이 오르는 곳은 일반적인 계단이 아닙니다. 지상에서 수십 미터, 때로는 100미터가 훌쩍 넘는 높이의 강철 구조물, 그 가느다란 철제 사다리가 그들의 일터로 향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발아래 풍경은 아득해지고, 거대했던 자동차들은 장난감처럼 작아집니다. 귓가를 스치는 것은 땅의 소음이 아닌, 오직 거친 바람 소리와 15만 4천 볼트 이상의 초고압 전류가 흐르며 내는 '쉬이익'하는 섬뜩한 소리뿐입니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감정은 본능적인 '두려움'입니다. 아무리 숙련된 베테랑이라 할지라도, 허공에 몸을 맡겨야 하는 아찔함과 한순간의 실수가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압박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특히 예측할 수 없는 기상 변화는 공포를 극대화합니다. 갑작스러운 돌풍은 육중한 작업자의 몸을 종이처럼 흔들고, 한여름의 뙤약볕은 강철 구조물을 뜨겁게 달구어 화상의 위험을 만듭니다. 겨울의 칼바람과 얼어붙은 철탑 표면은 그 자체로 거대한 흉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단순히 높이에 대한 공포(Acrophobia)에 그치지 않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흐르는 초고압 전류는 보이지 않는 위협입니다. 작은 실수 하나, 안전 절차의 미세한 누락 하나가 곧바로 감전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온몸으로 체감합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모든 움직임은 극도의 긴장과 집중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안전고리 하나를 옮겨 거는 아주 사소한 동작에도 수없이 확인하고 점검하는 과정이 뒤따릅니다. '안전'이라는 두 글자는 이곳에서 단순한 구호가 아닌, 생명과 직결되는 유일한 종교와도 같습니다. 이렇듯 송전탑 위는 인간의 나약함을 가장 극명하게 느낄 수 있는 고독한 섬과 같은 공간입니다. 오직 자신과 동료, 그리고 한 줌의 안전장비에 의지해 거대한 자연과 문명의 산물 앞에서 사투를 벌이는 현장인 것입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단 하나의 길, '완벽한 준비'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매일같이 그 지독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강철 거인 위로 오를 수 있는 것일까요? 그 비결은 초인적인 용기나 무모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두려움을 인정하고, 그것을 통제하기 위한 처절할 만큼 철저한 '준비'와 '신뢰'에 있습니다. 이들에게 작업은 땅 위에서부터 이미 시작됩니다. 작업 계획 수립, 안전 장비 점검, 기상 상황 분석 등 모든 과정이 퍼즐 조각처럼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야만 비로소 첫 발을 뗄 자격이 주어집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장비'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입니다. 자신의 몸을 지탱해 줄 안전벨트와 이중, 삼중으로 연결된 안전고리(카라비너), 전기의 흐름을 막아주는 절연 장갑과 절연화 등 수십 가지의 장비들은 단순한 도구가 아닌 생명줄 그 자체입니다. 매일 아침, 이들은 자신의 장비를 점검하고 또 점검합니다. 아주 작은 흠집이나 마모라도 발견되면 즉시 교체합니다. 장비에 대한 100%의 믿음이 확보되지 않으면, 단 1미터도 오를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철칙입니다.
장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동료'에 대한 신뢰입니다. 송전탑 작업은 결코 혼자 할 수 없습니다. 2인 1조, 혹은 그 이상의 팀으로 움직이며 서로의 안전을 확인해 주는 것이 기본입니다.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동료가 봐주고, 나의 실수를 동료가 지적해 줍니다. "안전고리 확인!", "장비 이상 무!"와 같이 땅에서는 평범하게 들릴 수 있는 외침들이 상공에서는 서로의 생명을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소통 방식이 됩니다. 수많은 현장을 함께하며 쌓인 끈끈한 동료애와 눈빛만 봐도 통하는 팀워크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가장 든든한 안전장치가 되어줍니다.
또한, 수많은 훈련과 경험을 통해 체화된 '지식'과 '기술'은 두려움을 자신감으로 바꾸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들은 송전 설비의 구조와 원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춘 전문가들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지, 그 위험을 어떻게 통제하고 대처해야 하는지를 몸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은 미지에서 오지만, 완벽한 앎과 경험은 그 두려움이 자리 잡을 틈을 주지 않습니다. 결국 이들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은, 막연한 공포를 '관리 가능한 위험'으로 바꾸어 나가는 끊임없는 노력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보이지 않는 손, 그들의 자부심
아찔한 공포와 극한의 긴장감 속에서 고된 작업을 마친 후, 땅으로 내려와 멀리 자신이 올랐던 송전탑을 바라볼 때, 이들은 어떤 감정을 느낄까요? 바로 세상의 어떤 찬사보다도 값진 '자부심'입니다. 자신들의 땀과 노력이 모여 도시의 불을 밝히고, 공장을 움직이게 하고, 가정에 따뜻함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특히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저 멀리 보이는 도시의 야경을 마주할 때 그들의 자부심은 극대화됩니다. 수많은 불빛 하나하나가 자신들의 손길을 거쳐간 전기로 밝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 어떤 금전적 보상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성취감을 안겨줍니다. 또한, 태풍이나 폭설과 같은 자연재해로 인해 전력 공급이 끊겼을 때, 이들은 가장 먼저 위험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모두가 재난을 피해 실내로 몸을 숨길 때, 이들은 오히려 악천후를 뚫고 송전탑으로 올라가 복구 작업을 펼칩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복구를 마치고 하나둘씩 불이 켜지는 마을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보람을 넘어선 숭고함에 가깝습니다.
사람들은 송전탑 유지 보수원의 존재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들의 노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스스로를 '국가의 혈맥을 관리하는 사람들'이라 부르며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합니다. 전기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듯이, 이들의 헌신 없이는 현대 문명 또한 유지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도 기꺼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오릅니다. 인간적인 두려움을 안고 오르지만, 세상을 밝힌다는 더 큰 자부심을 품고 내려옵니다. 다음에 길을 가다 거대한 송전탑을 보게 된다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위에서 묵묵히 세상을 밝히고 있는 보이지 않는 영웅들을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들의 땀방울이 바로 지금, 당신의 공간을 밝히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